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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로노어 |1회 프롤로그. 노예 작가 : 진화현 | 등록일 2019.11.09
목록으로 찜하기 첫회 책갈피 이전회없음 2회 귀족소년, 노예소녀 2019-11-09 72다음회 rss

, 하늘에서 새하얀 것은 그녀의 업보이니라. 그녀의 어깨에 내려 차곡차곡 짓누르는 것은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라 털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등에 짊어 진 것을 위해 털어내는 것을 잊은 순간 그녀의 손아귀에는 알지 못하는 자의 피로 가득하게 되어버리는 것을. 그래도 이 검을 놓게 되는 것은 그와의 약속을 져버리게 되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무언가 다짐한 듯 녹이 쓸어버린 투구를 벗었고, 흘러나오다 못해 넘치는 머리칼이 전장의 거친 바람에 흔들렸다. 불경한 백의 악귀. 단연 돋보이는 돌연변이는 빛을 잃은 청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아군 병사는 이미 도망간지 오래다. 전장의 먼지에 더렵혀진 뺨은 조금 상기된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코른. 저는 당신으로 여자로 있을 수 있던 찰나의 순간에 눈물을 흘립니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겠죠. 왼쪽 어깨에 감각이 멀어져만 가는군요. 한 낯 누더기 계집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곧 탈란 제국의 화살에 고슴도치가 저를 어미라 부르겠지요. 하지만 전 그 부름에 답하지 못하고 눈을 감으렵니다. 그러니, 그러기 전에.

 

 

엘로노어 폰 제네스!”

 

 

수백의 궁병들이 그녀를 향해 쏘기 위한 화살을 장전한다.

 

 

마음 없이 태어나!”

 

 

시위를 당기고.

 

 

분에 넘치는 마음들을 받은 자!”

 

 

사수들은 신호를 기다린다.

 

 

제네스에 영광있으리!”

 

 

그녀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무릎 관절을 움직인다. 이미 왼팔은 끝난지 오래다. 곧 끊어질 것 같은 오른팔이 남아있으니, 그녀의 키 만한 검을 바닥에 끌며 달린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함성을 지르며. 그것이 백색의 원귀들의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내려간 제국 장교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검의 넓을 면을 방패로 쓰며 전진한다. 고작 검으로 막아봤자 머리만 피할 수 있을 뿐. 무감각해진 다리에 화살이 박혔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팔, 허벅지. 어깨에 화살이 박히고 이내 몸은 한계를 드러냈고, 그녀의 검은 바닥에 박혀 빠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장이 몇 번이 뒤집어졌고, 밀고 당기기를 3. 제네스 연합국과 가리아 제국의 전쟁은 일단락을 맺으며 휴전에 들어갔다. 이 전쟁의 시작은 100년 전 어느 날 대지를 흔들며 떨어진 거대한 수정은 생태계를 바꾸며 여러 가지 기술을 발전시켜나아 갔다. 그 수정에 의해서 생겨난 국가와 종교들로 인해서 생긴 소유권다툼. 그렇게 벌어진 전쟁은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으나, 아직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전쟁이 일어난 그 대지에는 기묘하게 크리스탈이 풍족해 졌다고 한다.

 

 

* * *

 

 

습기가 가득하고, 냉기가 올라오는 차디찬 바닥과 벽. 미끌미끌 기분 나쁜 녹색의 무언가가 벽을 타고 흘러내려 방안에 있는 자들의 등을 적셨다. 넝마만 겨우 걸치고 있는 그들에게는 천장에 나있는 구멍에서 밖에 빛이 비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묶은 족쇄와 차디찬 철창은 영원히 그들을 빛에게서 격리시키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들어오게 해서..”

 

..”

 

 

무언가의 털로 가장가리가 장식이 된 부채로 입을 가리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오른쪽, 왼쪽. 옥안에 있는 사람들을 핥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중에는 옥문을 열어 직접 팔을 끌어 턱을 들어 올려 목부터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음부까지 확인하는 철저함까지. 검은 머리를 말끔하게 말아 올린 그녀의 망토 사이에는 백색의 드레스가 살랑거리고 있다. 악취가 나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망토, 가장자리의 금빛 자수는 옥 안의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충분했다.

 

 

여기는 이곳이 전부인가?”

 

.. 어찌 맘에 드는 것이 없나 보십니다. 하하.. 원하는 물건의 특징이나 그런 것을 말씀해 주신다면 다른 노예상을 수소문해서 수배해놓도록 하겠습니다요.”

 

...”

 

 

부채 속의 시선은 쉽게 옥안에서 눈을 때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찰나 옥안에서 빛나는 무언가.

 

 

저 계집을 보여주게.”

 

.. 저 계집 말입니까?”

 

 

노예상은 꺼림직 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는 뒤에 있는 시종들에서 손짓으로 명령을 했다. 옥문이 열리고 유독 그 노예만 재갈과 수갑이 뒤로 묶여 있었다. 시종들은 벽에 붙어있는 사슬을 제거하고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는 발에도 수갑이 차있어서 끌려 나오듯 옥을 빠져나왔다.

 

 

이것은 몇 살이지? 그리고 얼마나 이곳에 있었지?”

 

아마 나이는 10살로... 그리고 한 2년 정도 저희가 데리고 있었습죠. 워낙 거친 년이라 다른 노예상단에서 싸게 구매를 했습니다만, 여간 번거로운 녀석이 아니여서... 보시는 바와 같이 머리카락이 조금 특이하게 은발 띄고 있기 때문에 몇 번 찾으시는 분들이 있기는 했습니다요.”

 

그런데?”

 

그런데.. 그게 일주일도 못가서 반품을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저희가 이 녀석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요.”

 

발의 족쇄를 풀어라.”

 

!?”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감옥 속에서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 노예 상인은 귀부인의 말을 의심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노예상인은 반드시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을 반박하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부인의 탁한 은빛의 눈동자는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노예상인 이었다. 살찐 그의 손가락은 마지못해 노예의 발목을 가리켰다. 시중들도 머뭇거리기 시작하다가 이내 그녀의 발목에 족쇄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철컥하고 족쇄가 풀리고 그녀의 발에서 족쇄가 완전히 제거 되는 순간.

 

 

크악! ! 뭐하는 거냐! 저년의 다리를 잡아라!”

 

 

한동안 묶여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민첩한 발차기는 일순간에 노예상인의 면상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내 시종들이 강압적으로 제압을 하려고 했으나, 되려 얻어맞기 일 수 였다.

 

 

.. 부인! 얼른 도망가십시요! 경비대가 올 때까지 그년을 막을 수 있는 놈은 여기에 없습니다요!”

 

제법 깔끔하지 않느냐.”

 

..아아악! 아아!”

 

재갈이 불편한 모양이구나. 재갈을 제거해 주거라.”

 

히익! 제정신이십니까! 방금 제가 맞은 것 보셨잖습니까!”

 

 

노예상인은 허겁지겁 이곳에서 달아나버렸고, 이내 시종들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가버렸다. 그렇게 옥에는 철저히 극과 극에 위치한 두 사람이 있었다. 귀부인의 그녀는 땅에 떨어진 열쇠꾸러미를 들었다. 귀부인은 4개의 열쇠를 짤랑이며 노예를 도발했다. 머리가 하나 이상 차이나는 높이에서 귀부인은 철저히 노예를 내려다보았다.

 

 

..아가가아!”

 

할 말이 있는가 보구나. 어찌. 빼앗아 볼 테냐. 그렇지 않으면 순순히 나의 손에 자유가 되겠느냐. 착하게 있을 수 있다면 말이지.”

 

 

노예는 잠깐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뒤를 돌아 그녀에게 뒷모습을 보여줬다. 귀부인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뒤로 한 발자국씩 내딛어, 그녀와의 거리가 반보가 되었다. 그리고 일순 날아온 그녀의 뒷 차기.

 

 

아주 유연하구나. 하지만 맞추지 못했으니, 너의 반항은 실패했구나.”

 

 

귀부인은 노예의 발을 고개만 틀어 쉽게 흘림과 동시에 발을 잡았다. 그리고 노예의 나머지 발에 다리를 걸어 그녀를 아주 손쉽게 제압했다. 완벽하게 그녀의 위에 올라 그녀의 머리를 굽으로 밟았다. 노예는 그 발을 치우게 위해 머리를 들려고 했으나, 밟는 힘이 어찌나도 강했던지. 귀부인은 그녀의 머리를 발로 밟은 채로 그녀의 재갈을 제거 했다. 재갈을 얼마나 강한 힘으로 씹었으면 재갈로 물린 원통의 쇳덩이에 잇자국이 남을 정도 였다.

 

 

어디 할 말이라도 있더냐?”

 

...아아아! 으아!”

 

? 과연.”

 

 

그리고 귀부인은 그녀의 머리를 굽으로 강하게 밟았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짧은 단말마 이후 노예는 조용해졌다. 그렇게 그녀는 시종을 불려들어 노예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경비대를 대동한 노예상인의 표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 * *

 

 

노예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일지도 모른다. 노예는 자신의 키 만한 검을 들고 있었고, 매우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노예는 하늘 너머의 무언가 거대한 것의 앞에 서있었다. 그것은 때때로 태양보다 밝게 빛났고, 때때로는 피를 갈망하는 괴물과 같은 무언가가 되었다. 노예가 느낀 것은 어떠한 것보다 차가운 한기였다.

 

 

..”

 

 

노예는 눈을 뜸과 동시에 느껴지는 두부에 격한 고통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으아?”

 

 

그리고 느껴지는 자유로움. 그녀는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몇 달이나 묶여 있던 족쇄가 그녀의 팔에서 사라진 것이다. 노예는 팔을 들고 어깨를 돌리거나, 턱을 만지며 벌어져있던 턱을 주물렀다. 그리고 느껴지는 향기로움. 노예는 공기를 킁킁대다가 자신의 살결에 코를 닿았다. 그리고 난생 처음 느끼는 순면의 느낌. 노예는 난생 처음으로 옷이라는 것을 입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달콤한 향기였다. 노예에게는 있을 수 없는 향기였다. 노예는 몸을 웅크렸다. 눈을 감고 자신에게서 나는 향기를 맡으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잠기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노예는 향기에 취해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예는 눈을 뜨고 자신이 있는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안은 옥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벽에서는 더 이상 물기가 없었고, 축축하고 미끌한 녹색 이끼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노예의 엉덩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푹신하고 부드러움을 느꼈다. 노예는 이것이 침대인지도 모르고 그저 푹신함에 온몸의 신경을 빼앗긴 듯 했다. 발을 움직여 침대에서 벗어나 바닥에 맨발을 닿았다. 이 곳에는 하나 같이 부드러움 밖에 느껴지지 않음에 움찔거리며 털을 곤두 세웠다. 노예는 조심스럽게 한발자국씩 움직이려 했지만, 오랜 기간 묶여있던 터라 제대로 걸을 수는 없었다. 노예 상인을 때린 것은 그저 오랜 기간 묵힌 분노로 인한 기적일 것이다. 노예는 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빛이 조금 세어 나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눈으로만 보아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밝은 빛은 그녀와는 인연이 전혀 없없었다. 빛과 가장 먼 곳에 수감되어있던 그녀는 언제나 멀리의 빛을 동경했으니 말이다. 이제야 노예는 자신의 발로 빛이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있었다. 햇빛의 촉감이 느껴지는 커튼을 잡고 옆으로 조심스럽게 거두었고 노예의 쇄골에서부터 내리쬐는 햇빛이 그녀의 창백한 피부를 타고 안구에 미치는 순간.

 

 

! 꺄아아악!!”

 

 

노예는 커튼에서 급하게 떨어지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두 눈을 부여잡고 미친 것 마냥 소리를 지르는 노예. 직접 눈으로 쬐어진 햇빛은 노예의 눈에는 너무 과분했던 탓일까. 어둠에 익숙했던 노예의 두 눈에 방대한 햇빛을 담기에는 너무나도 눈부셨던 것이다. 그녀의 비명은 저택을 흔들기 충분했다.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싸고 있는 노예의 곁으로 무언가가 바닥을 울리며 다가옴을 노예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노예는 곧장 몸을 일으켜 간신히 뜬 눈으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를 응시했다.

 

 

우둔하구나. 빛에 이끌려 자멸하는 나방이라는 것은 과연 너를 뜻하는 모양이구나.”

 

 

아까 옥에서 봤던 귀부인을 본 노예는 본능적으로 반보 멀어져 자세를 잡았다. 때 묻지 않은 백색의 드레스 위로 내려온 칠흑 같은 흑발에는 윤기가 가득했다. 귀부인은 이번에 혼자가 아닌 시종들을 뒤에 달고 노예의 앞에 나타났다. 귀부인은 살짝 손을 튕기더니 시종들은 일제히 방안의 커튼을 걷기 시작했다.

 

 

아으으!”

 

 

노예는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눈을 뜨려고도 하지 않는 노예에게 약간의 시선을 흘기며 돌아섰다.

 

 

눈이 햇빛에 익숙해 주면 식사를 내주 거라. 혹시 말을 듣지 않거든 제압해도 좋다.”

 

예 이자벨님.”

 

 

귀부인의 이름은 이자벨 폰 빌헬름. 그녀는 연합국 퇴역 총사령관이자, 제네스 연합국의 백작이다. 그런 이자벨의 계급을 알 리가 없는 노예는 그저 옅게 뜬 눈으로 그녀를 경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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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앞으로 유토피아에서 연재하게된 진화현이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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