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이 오크의 사연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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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크의 사연 -이종족 라이프- |2회 Ep1 이 오크의 사연 -1- 작가 : 노멀맨 | 등록일 2020.02.23
목록으로 찜하기 첫회 책갈피 1회 회 Pr- 세계와 오크의 사연 2020-02-21 46이전회 다음회없음 rss
 퀭한 낯짝의 바냐는 홀로 한적한 숲길을 걸어갔다. 한동안 못 씻어 떡진 단발머리, 군데군데 얼룩지고 헤진 가죽 원피스, 그녀는 요 사흘간 쭉 철야로 일한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돈이 궁하다지만, 이 짓도 두 번은 못하겠다."

중얼댄 그녀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찜찜한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시작 전부터 고될 걸 알았지만, '대출 이자'란 홀로서기 성인의 슬픈 사정이 있어 이를 악물고 수행했다. 

쏟아지는 피로 탓에 점차 눈앞이 흐려진 바냐는, 이윽고 왼쪽 수풀 밑에 강이 보여 세수라도 할겸 내려갔다. 졸졸 흐르는 강 앞에 쭈그려 앉아 찬물을 끼얹으니, 불현듯 자괴감이 밀려왔다.

'일에 찌들수록 점점 여자로서 죽어가는 기분이야.'

그녀가 양손으로 얼굴을 한번 쓱 훑어 물기를 제거 한 찰나, 아주 심상찮은 게 눈앞에 나타났다. 

2m가 훌쩍 넘어 보이는 장신에, 몸 곳곳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옷이라곤 하반신에 걸친 낡은 반바지뿐인 괴상한 꼴의 인간 남자가 부러진 나무토막마냥 강줄기를 타고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 바냐는 헐레벌떡 물로 뛰어들었다.

"사, 살아는 있는 건가?"

남자를 육지까지 끄집어낸 바냐는 뒤늦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구하고 보니, 그의 몸은 얼어죽은 시체마냥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는 게 아닌가. 맥과 호흡도 약했다. 

당황한 바냐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주변을 두리번댔다. 남자를 얼른 치료할 곳으로 옮겨야겠는데, 이쪽은 외져서 건물은커녕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었다. 

때마침 근처에 인기척도 없고, 본래 목적지도 1km는 더 가야하고, 도움을 요청해 오면 아무래도 늦을 것 같고.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건 자신의 방전 직전인 몸뚱어리뿐인 절체절명의 상황. 사람의 생사 걸린 이상 뭐든 시도해야 했다.

고심 끝에 바냐는 등에 남자를 짊어졌다. 서로의 신장 차로 애를 좀 먹었으나, 기합까지 넣어가며 가까스로 성공. 

"으랴아!"

그녀는 지인 중에 근육쟁이가 많아, 덩달아 단련한 덕에 근력이 상당했다. 무거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무거워... 하지만 내 등에서 사람이 죽는 건 사양이야. 절, 대, 살려."

그 뒤로 바냐는 정신없이 나아갔다. 단전에 있던 힘까지 모조리 끌어쓴 탓에 극한의 피로가 밀려왔지만, 사람 살린다는 일념으로 꾿꾿이 버텨냈다.

잠시 후, 간신히 목적지였던 길드 '검은 태양'의 관 후문에 도착한 바냐는 현관 계단 앞에서 풀썩 쓰러졌다. 

미처 내려 놓지 못한 남자의 체중에 그대로 압박사당할 뻔했으나, 때마침 흡연하러 나와 있던 바텐더복 차림의 두 길드원 덕에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금발 곱슬머리 위에 길쭉한 두 귀가 돋은 토끼 수인 로버트와 검정과 흰색이 섞인 특이한 머리 배색의 펭귄 수인 웨인. 둘은 같은 마을 출신의 오래된 죽마고우인데, 성격은 정반대였다.

웨인은 깜짝 놀라 꺼낸 담배를 곽에 돌려놓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반면, 로버트는 귀찮다는 듯 입에 담배를 물고는, 태연하게 바지 포켓에서 지프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걱정 어린 낯빛의 웨인은 다급히 바냐 위에 있던 남자를 옆으로 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 사람은 또 누구고?"
"그게... 물살에 흘려가는 낙엽 같던 걸 데려왔달까?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데 얼른 치료실로 옮겨 줄래."

이해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한 웨인은 바냐의 부탁대로 우선 남자를 부축해 일으켰다. 수인인 그라도 반나체의 인간 남자는 꽤 무거운 듯했다.

"바냐 씨는 괜찮으세요?"

마지막까지 바냐를 걱정한 마음씨 착한 웨인. 아직 손 하나 까닥 못하는 바냐였지만, 한번에 둘을 옮기게 하는 건 무리일 듯 싶어 애써 태연한 척했다.

"난 걱정 마. 살짝 지쳐서 그렇지... 잠깐 숨 돌리고 알아서 들어갈게."
"그러... 신가요. 알겠습니다. 얼른 오세요." 

웨인은 남자를 데리고 먼저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이곳에는 재기불능인 바냐와 태평하게 흡연 중인 로버트만 남았다.

"저기, 로버트 씨? 저 좀 치료실 침대까지 옮겨 주시겠어요. 흡연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저는 당장 침대에 안 누우면 죽어 버릴 지경이거든요."

바냐가 간절히 부탁하지만, 로버트는 대놓고 멸시하며 입에 머금은 연기를 뱉었다. 그가 팔을 기댄 현관 기둥에는 '길드 내 금연'이라는 문구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거 돗대다. 흡연자한테 이 한 개비는 감미롭다고. 다 태울 때까지 기다려."

그러나 지금 바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버려진 개마냥 애절하게 쳐다보는 것뿐, 그 앞에서는 어떤 흡연도 불편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로버트는 급하게 피는 걸 매우 싫어했다.  

"하여튼... 나중에 새 거 하나 사라."

라며 먼저 포기한 로버트는 아직 좀 남은 담배를 집게 손가락으로 튕겨 옆에 있던 재떨이 통에 버린 뒤, 언짢은 낯짝으로 바냐를 부축해 일으켰다.

"헤헤, 여유 생기면."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 바냐지만, 그 약속에 기약은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대출 이자를 다 갚기 전까지는.

치료싱은 2층 복도 왼쪽 끝에 있어, 두 사람은 가까운 계단에 올랐다. 바냐는 공짜 수액을 맞을 생각이 내심 신났다. 그녀는 공짜라면 뭐든 좋아했다.

"대체 뭔 꼴이냐. 무리해서 퀘스트하고, 정체도 모를 남정네나 주워 오고."

로버트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바냐는 울컥해 곧장 반론했다.

"그대로 뒀으면 진짜 죽었을지 모른다고. 그 꼴을 봤으면 너였어도 구했을 걸."
"너처럼 오지랍 안 넓거든... 하긴, 넌 예전에도 유기동물 보는 족족 주워 왔었지. 그거 분양하느라 애들이랑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리 말한 토끼는 당시 귀찮다며 도망쳤다. 

정곡을 찔린 바냐는 잠시 꿍해 있다, 이내 맞받아칠 사건이 떠올라 의기양양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는 너도! 배추밭 서리하다 주인한테 걸려서 애들이랑 같이 밭일 도왔잖아! 아니, 그 와중에 혼자 도망쳤지, 넌!"
"14살 먹고 바지에 지린 놈한테 듣고 싶지 않네."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온 로버트의 직격타. 이는 가불기라 바냐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목소리도 격양됐다.

"너, 너... 그건 아니잖아. 금기어잖아... 선 넘었잖아."
"그러고 나랑 웨인한테 와서는, 우리가 2살 더 어리니깐 대신 한 걸로 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지."

바냐가 뭐라하든 아랑곳 않고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때려 넣는 로버트였다. 방금 전 돗대에 복수인 듯했다.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 바냐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으으, 진짜 너무해. 그런 남에 흑역사는 머리에서 좀 지우라고." 
"이게 맘대로 잊히냐. 나도 충격이었다고. 그 나이에 연상이 자기 지린 이불 갖고 와서 대신 혼나달라니... 내 동심은 어쩔 거냐."

한치의 양보도 없는 로버트의 태도에 바냐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분했다. 하지만 과거의 흑역사를 들춘다면 백퍼센트 자신이 덜미 잡힐 게 더 많아 얌전히 꼬리를 내렸다. 

"내가 너 때문에 시집은 다 갔다니깐."
"그래, 시집은 다음 생에 가라."

그걸 또 태연하게 맞장구치는 로버트였다.

여러 가지로 상처만 안겨 준 대화를 마친 그들은 어느새 2층에 다다랐다. 치료실은 오른쪽 복도 끝에 있었다.

로버트가 두 개로 된 치료실 문 중 오른쪽 걸 연 순간, 뭔가가 왼쪽 걸 안에서부터 우지끈 아작내며 튀어나왔다. 웨인이었다.

"푸학!"

폭격이라도 맞은 듯 엄청난 기세로 튀어나온 그는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뒤, 쭉 미끌어져 2층 난간에 등을 콱 부딪혔다.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뭐, 뭔 일이야?!"

깜짝 놀란 바냐가 웨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기절한 웨인 대신 계속 정면을 보고 있던 로버트가 대꾸했다.

"아무래도 저거 같은데."

그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린 바냐의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자신이 데려온 남자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 상태 나쁜 채로 기절해 있던 그가 무슨 영문인지 지금은 아주 멀쩡하게 서 있었다. 전신의 근육과 힘줄을 움찔대며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댔다.

"크아아아!"

갑자기 짐승마냥 포효한 그는 높이 점프해 바냐와 로버트에게 달려들었다. 

바냐는 일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 와중에 남자의 눈에 초점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무의식 상태였다.

"뭐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귀찮게 굴지 말고 다시 자라."

로버트는 남자를 막기 위한 듯 오른손에 마력을 모았다. 바냐는 바로 옆에 있던 그에게 남자가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릴 여유가 없었다.

"자 ,잠깐...!"

돌발 미션, '이성을 잃은 남자를 막으면서 토끼와 자신도 지켜라.' 

이 상황에서 다리 풀린 바냐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리에 드러눕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누웠다. 달려드는 남자와 맞닿기 직전에 로버트와 함께. 

바냐는 남자가 충돌하기 직전,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혀 나자빠졌다. 그녀는 부축을 위해 로버트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조여서 같이 넘어갔다. 급작스런 전개에 로버트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궭...!"

어느 정도 인지하고 움직인 바냐와 달리, 이끌려간 로버트는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후두부를 세게 박았다.

남자는 허공에 두 손을 허우적대며 두 사람을 지나쳤다. 그대로 붕 뜬 몸을 주체 못하고 더 나아가, 아직도 기절 중인 웨인이 부딪혔던 난관 끝에 머리를 박고 아래로 떨어졌다. 

피한 것까진 좋았으나, 괜히 더 충격을 가한 게 아닌가 걱정이 밀려온 바냐는 뒤통수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는 로버트를 뒤로 한 채, 벌떡 일어나 남자가 떨어진 난관으로 갔다. 아직 거동은 힘들어 다리가 엄청 후들댔다.

"끄아아악!"
"으아아! 살아 있나? 살아 있겠지?!"

바냐는 난관에 기대 1층을 봤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졌는데도 난법을 잘했는지 아주 멀쩡해 보였다. 주변에 부서진 곳도 없었다. 

"다행이다."

그녀가 안도하기 무섭게, 남자는 다시 날뛸 듯 또 괴성을 질러댔다. 

타이밍 나쁘게 길드원 세 명이 1층 홀에 들어섰다. 곰 같은 체격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인간 게론과 검은 비니를 푹 눌러 쓴 엘프 마트보, 목에 목줄을 찬 동그랗고 귀여운 눈의 개 수인 파블이었다. 그들은 딱 푝주 중인 남자와 마주쳤다.

"저, 저걸 어떻게 해..."

당황한 바냐는 미처 도망치라 소리도 못 치고 제자리에서 허둥댔다.

"응? 누구지? 신입인가?"
"우와, 몸 쩐다. 옷도 그렇고. 무슨 광전사 컨셉인가?"
"꽤 파격적인 놈이 들어왔네~."

그런 줄 알고 셋은 스스럼없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바냐는 걱정이었다. 

"어이, 안녕하신괅....!"

선두에 있던 게론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남자는 다짜고짜 타격감 넘치는 안면 펀치로 강렬한 첫 인사를 날렸다. 게론은 그가 뻗은 주먹에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찍었다.

"우와, 뭐야? 초면 인사치고는 센데."
"훅 들어오네. 배짱 두둑하구만."

같이 있던 마트보와 파블은 걱정따윈 없는 낯짝으로 가볍게 감탄했다. 연이어 두 사람이 나서려는데, 주저앉았던 게론이 벌떡 일어나 가로막았다. 

"잠깐!"

표정이 나빠진 그의 왼쪽 콧구멍에는 피가 새어나왔다. 

"저 게론 씨를 일격에 코피까지, 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바냐는 깜짝 놀랐다. 그가 맞아서 코피를 흘리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다.

게론은 엄지로 반대 구멍을 막은 뒤 채 킁, 하고 코 안에 고인 피를 깔끔히 내보냈다. 

"감히 면전에 선빵을..."

중얼거린 게론은 굉장히 화가난 듯 보였다. 이윽고 그는 멜빵바지 안에 받쳐 입은 흰색 와이셔츠를 양손으로 찢어발겨 벗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이거 참 흥분되는구먼!"

이게 바냐가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여기 길드원들의 종특일랄까, '과격함', '터무니없는'이란 키워드가 들어간 모든 상황이면 텐션이 미친듯이 올라갔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관계없이. 특히나 치고 받는 걸 좋아하는 '싸움 바보'들이었다. 

게론의 얼굴은 급 화색이 돌았다. 옷 아래 숨겨 뒀던(어차피 커서 다 드러났지만.) 자신의 거대한 근육들을 뽑내며 불타올랐다.

"젊은이한테 피를 보이다니, 나도 참 늙었군."

아쉬운 듯 말하고선, 혀를 날름 내밀며 입맛을 다시는 그였다.

바냐의 경험상 앞으로의 전계는, 곧 조용하던 길드 메인 홀이 갑작스런 '싸우자'판으로 소란스러워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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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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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02-21 | 조회수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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