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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로드 |1회 <단편> Dream Road 작가 : 천문학자 | 등록일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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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am lord 단편

<Dream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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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유리 창을 강하게 때린다. 오랜만에 꾸는 꿈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너무 기묘한 느낌이다. 흰 머리의 작은 소년이 내가 평소에 입는 옷을 입고 광활한 숲 속에서 방황하는 꿈을 꾸었다. 마치 내가 그 소년이 된 것처럼 꿈을 꾸는 내내 어떠한 열망에 휩싸여 있었다. 그토록 강렬한 감정은 오랜만이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마음은 급했다. 누군가를 쫓는 것 같기도 했고, 도망가는 것 같기도했다.

 여느 다른 꿈들과 같이 한 번 잠에서 깨고 나면, 방금만해도 선명했던 시야가 깊은 안개 속에 갇힌 것 마냥 흐물거리는 기억의 조각으로 남았다. 스승님께선 이 현상을 '미완성'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여러가지의 복합적인 뜻을 담고 있는데, 꿈의 세계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것은 꿈의 사제들에겐 완성되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사제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일지도.

 그렇다는 말은 곧 오늘밤의 수련도 실패로 끝났다는 걸 의미했지만, 여의치는 않았다. 추운 기운 이 들어 몸은 굳었지만, 흐릿한 열망의 잔해가 여전히 불씨가 되어 속이 타올랐다. 이 느낌을 빨리 세아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스승님께는 이런 튀어오르는 감정을 털어 놓기 겁났다. 항상 결론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제니트." 였으니까. 아마 스승님께서는 내가 꾸는 이런 꿈들이 제대로 된 수련의 결과라고 생각하시지는 않는 듯 싶었다. 애초에 꿈의 사제치고 매번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지만.

 내일 아침에 들을 스승님의 잔소리를 생각하니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졌다. 목이 말라 억지로 일 어나 그릇에 담아둔 물을 마셨다. 그리고 일어난 김에 땀에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고, 다 녹아버린 초를 예비분으로 바꾼 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 익숙해진 눈으로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간간히 번쩍이는 같은데 천둥소리는 강렬한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비가 내렸었나? 모르겠다. 눈을 감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았다. 긴 밤에 꽤나 많이 뒤척여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복도에 울리는 딸랑 거리는 종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주어진 청소와 개인정비시간을 서둘러 마치고 식당으로 가서 빵 한 덩어리와 옥수수 스프로 배를 달랬다. 건물 입구에 계신 사감 선생님께 아침보고를 드리고, 빠르게 약속 장소로 뛰었다. 그곳엔 벌써 세아가 스승님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꿈 꿨니, 제니트?"

 잔소리의 시작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다행이 남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고아원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두에 내가 서고 스승님과 세아가 뒤를 따랐다. 엄격한 사제의 규율때문에 이동하는 동안 아무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사제의 규율은 너무나 방대하고 지킬 것이 많았다. 사원 외부에서 품위를 지켜야함은 기본이고, 내부에선 성별이 다른 동급 수습사제 끼리는 대화를 섞을 수가 없었다. 물론, 어르신들이 사원 안 생활 패턴을 완전히 구별 하기 때문에 만날 수도 없었지만.

오늘처럼 주말마다 고아원에 가서 여러가지 일을 돕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요 몇 년간 반복되어 일상이 되었지만, 사실, 주말에라도 사원 밖으로 나가면 세아와 맘껏 대화할 수 있다는 잔꾀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물론 스승님은 이런 내막을 모르시지만 말이다. 고아원에 도착 후 잠시동안 스승님은 언제나처럼 걱정섞인 주의를 늘어놓으신 후 저녁에 돌아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사원으로 돌아가셨다.

 "휴, 드디어! 잘 지냈어?"

 세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옷에 달린 모자를 뒤로 젖힌 후, 묶은 머리를 풀어헤쳤다. 겨우 일주일 만에 보는 그녀는 머리카락이 더 길어진 것 같았다. 회색의 긴 머리칼이 선선한 바람에 흔들렸다. 몹시 편해보여서 나도 그녀따라 모자를 벗었다. 이때만큼은 자유로운 신분이 되는 기분이 든다.

 들어가기 전 아주 짧은 시간동안 일주일동안 일어난 대략적인 일들을 공유했다. 사실 나는 별로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할 말이 많은 세아가 떠들었다. 그녀는 최근 정식으로 사제가 되기 전 봐야하는 시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통 견습 사제때는, 로이테스어와 세계사, 신학, 철학 등등 학문적인 내용들을 주로 배우게되지만 사실 시험은 '접몽(蝶夢)' 능력이 중요하다. 세아는 최근 접몽을 성공시켜 사원 구석 아무도 가지 않는 풀숲에 서 홀로 다리를 다쳐 쓰러져 있는 사제를 발견했다. 세아 덕분에 한동안 사원이 꽤나 시끄러웠다.

 어쨌든 그녀는 이번 주에 대사제님을 만나 함께 여신께 기도를 올리기도하고, 향후 정식 사제가 되면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저 그녀가 대견하고 부러울 뿐이었다.

 "그럼, 너는 그 중에 뭐하고 싶어? 옛날엔, 로이테스에서 벗어나서 멀리 여행가고 싶어했잖아."
 "응. 근데 우선은 여기서 좀 더 있을거야. 파첸 스승님껜 선생님이 되고싶다고 했어." 세아는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꾹 찌르더니 말을 이었다.
 "여행가면, 너랑 떨어지게 되니까! 너도 접몽에 성공할 때 까진 로이테스에 있어야지."
 "사실, 있잖아 어제 밤에 꿈을 꾸긴했는데 ⋯."
 "거기, 숙녀신사분들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들어오시죠?"

 한참 떠들고 있을 때, 건물 안에서 어머니 헤르시께서 나오셨다. 퉁명스런 목소리였지만 누구보다 인자한 표정과 마음을 지닌 어머니는 세아와 내가 어렸을 때 돌봐주셨던 화수모신(花樹母)교 수녀님이셨다. 우리는 그녀에게 달려가 포옹을 나눴다.

 "일주일 동안 별 탈 없었겠지?"
 "네, 수녀님."
 "오늘도 와줘서 고맙구나."

 우리는 어머니와 수녀님들을 따라 일과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보통 세아의 역할이었다. 세아는 머리도 똑똑해 아는 것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그녀만 알고 있는 전래동화나 혹은 역사를 쉽고 재밌게 풀어내기도 했다. 지나가면서 보면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힘쓰는 일을 도와드렸다. 오늘은 텃밭 가꾸는 것을 도와드렸는데,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식구가 더 늘어난 탓인지 올해의 텃밭 규모는 작년보다 좀 더 커졌다. 지나가는 말씀으론 시에서 지원해주는 음식들이 달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하셨는데, 왠지 사제님들이 점점 왕궁으로 차출되는 일도 전쟁이 힘들어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비를 나르고, 물을 길어오고 바쁘게 움직이니 어느덧 점심시간을 훌쩍 넘었다. 이미 아이들과 세아는 점심을 먹고 난 후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간소하게 참으로 배를 채웠다. 텃밭 정비가 어느정 도 끝났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오후 일정 대신 자유시간을 허락해 주셨다. 어차피 자유시간이라 해봤자 할 일이 없던 나는 곧장 세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들은 마당 풀밭에 앉아서 세아가 읽어 주는 책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뒤에 앉았다. 이 고아원에 있을 때 많이 읽었던 거인에 맞서서 싸운 어느 소년의 이야기였다.

 해가 중천에서 살짝 기울자 세아도 자유시간을 할당 받았다. 일주일 중 가장 달콤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아무런 간섭도 없고, 사제의 규율이 얽히지 않는 유일한 시간. 나와 세아는 고아원 뒷편, 발 아래 숲 저 멀리 로이테스 수도가 희미하게 보이는 벤치에 앉아 온전한 자유를 느꼈다. 바람이 선선하게 흘렀고, 빗물에 머금은 땅과 나무의 향기가 기분 좋았다. 머리 뒤로 나무 사이를 뚫고 들 어오는 햇살이 운치까지 더했다.
시간이 흐르고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나는 눈앞에 펼쳐진 숲의 풍경을 보며 세아에게 어젯밤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또 그 꿈이야? 왜 그 꿈만 꾸는걸까?"
 "스승님은 내 마음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래. 실제로 그 꿈만 꾸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런데 다른 날은 아예 꿈을 못 꾼다며. 마음 만의 문제라기엔 이상해. 여전히 자세히 기억나는 건 없는거지?"
 "응, 숲의 모습을 기억하려고 하면 꼭 눈 앞에 안개가 낀 기분이 들어. 이젠, 나한테 정말 사제의 능력이 있는걸까 싶기도 해."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세아는 고개를 돌려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그녀의 진한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푸른 눈동자는 항상 왠지 모를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왠지 무슨 말을 하고싶어하는지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입 밖으로 그녀의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잡은 손을 유지한 채, 입술을 꼭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견습사제가 사제가 되지 못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아이들은 사원에서 나와 사회로 혹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특히 나같은 고아 출신들은 나와 사회에 버려지는 것과 같다. 농담삼아 헤르시 어머니께서 갈 곳 없으면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오늘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그리움을 느꼈다. 지금 나와 세아 모두가 과거의 기억을 헤집고 있다는 걸 느꼈다. 둘다 같은 수녀님 밑에서 자라서, 같은 사제회에 들어와 자랐지만 그녀는 뛰어났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와의 거리가 아득히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이곳에 남는다면 평생 그 감정에 갇혀 살 것 같았다.

 또 어쩌면, 그녀가 사제가 된다면 오늘같은 날도 마지막이겠지. 어젯밤 꿈 속에서 느꼈던 열망의 근원이 혹시 오늘을 향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근데, 아까 했던 말 있잖아."
 "응? 어떤 말?"
 "나 기다린다는 거 진짜야?"
 "당연하지, 바보야. 약속했잖아, 같이 가기로."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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